<특별칼럼> 1932년4월29일 윤봉길의거 성과를 다 함께 기억했으면, 윤주 매헌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 부회장, 윤봉길…
본문
[특별칼럼]
'1932년 4월29일 윤봉길의거' 성과를 다 함께 기억했으면
<아래 사진, 매헌 윤봉길의사 상해의거 제87주년 기념식, 2019년 4월29일 오전 10시>
▲윤주 매헌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 부회장(매헌 윤봉길의사 조카)
윤봉길의거 88주년을 맞아 그가 큰 뜻을 세우고 집을 떠나며 남긴 글은 큰 울림과 공명을 자아낸다.
‘사람은 왜 사느냐. 이상을 이루기 위하여 산다.
보라! 풀은 꽃을 피우고 나무는 열매를 맺는다.
나도 이상의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를 다짐했다.
우리 청년시대에는 부모의 사랑보다 형제의 사랑보다 처자의 사랑보다도 더 한층 강의(剛毅)한 사랑이 있는 것을 깨달았다.
나라와 겨레에 바치는 뜨거운 사랑이다.
그 강의한 사랑을 따르기로 결심하고 이 길을 택하였다.’
바로 이것이 장부의 길이고, 그 강의한 사랑은 상하이거사로 이어진다.
윤봉길의사는 1932년 4월 29일 중국 상하이 홍커우공원에서 열린 일제의 상하이점령 승전기념식 단상에 폭탄을 던져 일본군 수뇌부에게 파천황적 천벌을 내렸다.
이 의거만큼 큰 성과를 낸 사례는 한국독립운동사에서 찾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성과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이 있듯이 우리가 순국선열의 숭고한 위업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이 나라의 미래는 없다.
윤봉길의거의 성과를 기억해야만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에 한국독립운동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했을 뿐만 아니라 20세기 극동에서 제국주의 몰락의 조종을 친 윤봉길의거의 성과를 살펴본다.
첫째, 임시정부를 소생시켰다.
임정은 수립초기부터 이념 대립과 출신지역에 따라 갈라져 싸워 그대로 가라앉는 ‘난파선’과 같았다. 그나마 1920년대 후반기부터 1932년 초에는 재정상황이 최악이어서 김구선생의 표현처럼 존속마저 위태로운 식물정부였다.
윤봉길의 폭탄으로 인해 각지에서 지원금이 쇄도해 끝없이 추락하던 임정은 극적으로 소생해 광복까지 이어 갈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 대한민국이 그 법통을 이을 수 있게 했다.
둘째, 윤봉길의거는 일제의 ‘문화통치’하에 신음하고 있던 국내 한민족의 민족의식을 일깨워 주고 독립정신을 크게 고취시켰다.
그 결과 한국인들이 나라를 잃은 지 20여 년이 흐르며 일제에 순응해 가는 현실에 기운이 쇠하여 사그라지던 국내외 독립운동에 새로운 활로를 불어넣어 주었다.
셋째, 한국독립운동이 매우 완강하고 치열하게 전개하고 있다는 실증을 가장 효과적으로 전 세계에 알려 한국과 한국인의 존재와 독립의지를 크게 부각시켰다.
넷째, 만보산 사건으로 악화된 중국인들의 반한 감정을 해소시켰다.
1931년 7월 만주 길림성 만보산 지역에서 조선인과 중국인들 사이에 수로(水路)문제로 다툼이 발생했다. 이를 이용해 일제는 한중 양 민족을 이간시키려고 만보산 사건을 조작했다.
‘조선 농민이 중국인들에 의해 엄청난 피해와 함께 무참히 죽어가고 있다’는 가짜 정보를 우리 언론에 흘려 신문에 기사화 됐다. 이에 분노한 우리 국민들이 국내에 있는 중국인 100여명을 살해했다.
그 보복으로 만주에서는 중국인들이 한국인들을 닥치는 대로 살해하는 사태까지 벌어졌고 날이 갈수록 중국 내에서 반한 감정과 조선인에 대한 불신은 불꽃처럼 타올랐다.
그때 마침 윤의사가 상하이를 침공한 일제를 응징하자 분위기는 급반전돼 중국인들은 한국인에게 감사를 표하고 협조함에 따라서 중국 안에서 한국독립운동이 보다 순탄하게 전개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었다.
아울러 상하이사변(1932.1.28) 이전 일제의 침략에 무력했던 중국인들에게 항일의식을 고조시켜 한중 공동항일전선의 터전을 다지게 하였다.
다섯째, 한국독립의 결정적 계기를 마련했다.
중국인들은 자신들의 응어리진 한을 대신 풀어주었다는 점에서 윤봉길의거에 열광했다.
중국 국민당 장제스 총통은 임정을 전폭적으로 지원하며 사실상 승인했다.
한편 중국 공산당도 윤의사를 ‘상해 보위전 순국열사’ 명단에 올리고 중국 인민의 민족영웅으로 추앙하며 우리당 동지들을 격려해준 혁명정신과 그 용맹을 이어받아 전진할 것을 다짐했다.
중국 인민들이 윤봉길 장거를 높이 평가하는 역사의 흐름에 따라 그 장거에 크게 감동 받은 장제스는 1943년 전후 처리를 논의하고자 열린 카이로회담에서 미국과 영국의 반대를 물리치고 한국독립약속을 받아냈다.
장 총통이 솔선해서 한국의 독립을 대변하게 된 배경에는 윤봉길의거가 있었음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이처럼 윤봉길 의거는 임시정부를 되살리고 나라를 다시 찾는 결정적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매우 크다.
덧붙여 윤의사가 폭탄을 던진 장소에 표지석을 설치해 그 역사적인 지점을 후손에 전해주었으면 좋겠다.
<편집자주: 윤봉길의사 조카인 윤주 매헌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 부회장의 특별칼럼 제공에 감사를 드린다.
윤주 부회장은 “코로나19로 인해 상해 홍구(루쉰)공원에서 한중 양국정부가 개최하던 ‘상하이의거 88주년 기념식’ 행사가 취소됨을 안타깝다”고 말하면서 “다음 기회에 상해를 방문하겠다”고 전했다.>
ⓒ 상해한인신문 shkonews@naver.com
http://blog.naver.com/shkonews
한중평화의소녀상(中韩和平少女塑像) 건립추진위원회
건립추진위원 모집 안내
국적: 중국 또는 대한민국
모집 대상: 학생(고등학생, 대학생), 학부모, 여성, 학자, 기업인, 공공기관 등.
응모처: 한중평화의소녀상 건립추진위원회
문의사항: +86-152-0199-9916/135-8569-2959
이메일: 1298547421@qq.com
한중평화의소녀상 건립추진위원회 위원장 김승영
중국 상하이 화동지역 코웨이 공기청정기 정수기 연수기
"당신에게 지금 필요한 물! 이젠 중국에서도 안전하게!"
매장주소: 上海市闵行区虹泉路1000号井亭大厦
<중국 상해화동지역 코웨이 문의전화>
상해사무실: 021-6446-6890, 상해매장: 189-1851-3310
소주: 139-1310-1909, 무석: 151-6151-5680
가흥: 189-1851-3310, 곤산,염성: 186-2625-4644
반석부동산 PSI(PS INTERNATIONAL)
부동산 전문가 반석, 중국&베트남 부동산 투자 상담
절강성 항저우 오피스 투자상담
주택부동산(임대/매매/분양)
+86-21-6270-0915
오피스/상가 +86-21-5441-2701
189.3085.8523/131.6719.8219/186.1697.0040
중국 상해 남영한국주방용품
중국 상해 화동지역 한국 주방용품 5,000여 가지 최다보유 업체
주방설비/식당용품/주방용품/생활용품 등
한국식당 납품 전문 및 주방용품 도매 전문 업체
핸드폰:131-2782-1458/158-2175-7237
전화:021-5476-3775
주소: 上海市闵行区虹泉路1000号井亭大厦1楼(홍췐루 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