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한국언론진흥재단 후원, 기획보도시리즈2, 대한민국임정 100주년 항일독립운동 역사현장2, 스물다섯 영원한 청년 ‘윤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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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한국언론진흥재단 후원] 기획보도 시리즈 2
<2019년은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는 해이다. 중국 상하이에서 시작된 대한민국 임시정부 역사 유적지와 항일독립운동 선열들의 발자취를 기억하기 위해 탐방을 하고 취재를 하였다.
본지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후원으로 ‘대한민국임시정부 100주년, 항일독립운동과 한반도 평화’에 대해 5차례 시리즈로 기획보도를 실시한다. 대한민국 100년의 역사를 기억하고 새로운 100년을 준비하여 한중관계가 더욱 발전하고 한반도 평화와 번영이 지속되기를 기대한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항일독립운동 역사현장 탐방(2)
스물다섯 영원한 청년 ‘윤봉길 의사’ 상하이의거, ‘대한민국임시정부’ 격동의 현장!
상해 홍구공원(루쉰공원) 의거 현장, 항일독립운동 전 세계에 알린 역사적 장소
윤봉길 의거 이후, 대한민국임시정부 상해에서 가흥~항주~진강 거쳐 충칭 이동
상해 매헌기념관 유적지, 흥사단 원동위원부, 김해산-신규식 거주지 등 역사탐방
대한민국 100년,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역사의 뿌리이자 정신..미래 100년 준비
“항일독립운동 선열들의 발자취 기억, 진정한 독립은 한반도 평화와 번영 통일”
<선서문>
“나는 적성으로써 조국의 독립과 자유를 회복하기 위하여 한인애국단의 일원이 되어 중국을 침략하는 적의 장교를 도륙하기로 맹세하나이다.”
대한민국 14년(1932년) 4월 26일
선서인 윤봉길 한인애국단 앞
<독립운동가 김해산 선생 거주지> 1932년 4월 29일 아침, 백범 김구와 윤봉길의사가 상하이의거를 앞둔 거사 당일..마지막 아침 식사를 하고 ‘시계’를 교환한 장소
대한민국임시정부는 항일독립운동사의 대전환을 일으키는 역사적인 의거를 1932년 4월 29일 상해 홍구공원(현재 루쉰공원)에서 일으킨다.
4월 29일 아침, 백범 김구는 스물다섯 청년 윤봉길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의정원 의원이었던 독립운동가 김해산의 집에서 마지막 식사를 함께 하고 서로 시계를 교환했던 역사적인 장소이다.
백범 김구는 <백범일지>에서 거사를 앞두고 시계를 교환하였던 일을 아래와 같이 회고하였다.
“제 시계는 어제 선서식 후 선생님의 말씀에 따라 6원을 주고 구입한 것인데, 선생님 시계는 불과 2원짜리입니다. 저는 이제 한 시간밖에 더 소용없습니다”
상하이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은 상해 신천지(上海新天地)에 소재한 상해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 유적지를 방문한다. 매년 30만 명이 넘는 관람객이 임정 청사를 방문하지만, 걸어서 15분 정도 거리에 있는 <독립운동가 김해산 선생 거주지>를 알지도 못하고, 방문하는 이도 드물다.
김해산 선생 거주지는 지난 호에 소개하였던 대한민국 임시정부 두 번째 청사(현재 H&M 매장 입주 건물)에서도 도보로 5분 이내에 도착할 수 있다.
상해 지하철 13호선 화해중로(淮海中路)역 1번 출구로 나와서, 동쪽 방향으로 10분 정도 걸어가면 엔당루(雁荡路)와 만나게 된다. 엔당루에서 2분 정도 남쪽으로 가면 도로 오른쪽에 원창리(元昌里) 골목이 나온다. 골목에 들어가 바로 오른편 엔당루 13호(雁荡路56弄13号) 건물을 만나게 된다.
이곳이 87년 전 김구 선생과 윤봉길 의사가 마지막 식사를 하고 시계를 교환하였던 장소이다. 또한 여기서 식사를 마친 윤봉길 의사는 택시를 타고 상하이 홍구공원으로 출발하였다.
1910년대에 건축된 이 주택단지는 아직까지 주민들이 살고 있다. 상하이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이 꼭 한번 이곳을 방문하였으면 한다.
100년 전 건물이 아직도 남아 있으며, 이곳에 조그마한 표지판이라도 설치하면 좋을 듯 싶다.
김해산 거주지에서 2분 거리 <예관 신규식 선생 거주지>, 100년 전 건물 그대로 유지..현재는 아파트단지 공사, 금년 10월경 공사 완료
예관 신규식 선생은 청년 시절부터 불의에 항거하였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군인이었던 예관 선생은 분노하여 의병을 일으키려 했지만 실패했다.
결국 불의에 항거하기 위해 독약을 마시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였다. 예관 선생의 음독자살 시도는 가족들이 발견하여 죽지 않았다. 하지만 신경에 문제가 생겨 오른쪽 시력을 잃었다.
선생은 나가라 망했는데 어찌 세상을 바로 볼 수 있겠냐며 자신의 호도 아예 ‘흘겨본다는 뜻’의 예관(睨觀)으로 지었다. 1910년 일본이 한국을 병탄하자 1911년 예관은 상하이로 망명한다. 그는 중국 신해혁명에도 참가한 유일한 한국인이다.
예관 신규식 선생이 거주하였던 곳은 상해시 남창로 100농 5호(南昌路100弄5号)이다. 김해산 선생이 거주하였던 장소에서 2분이면 도착할 수 있다. 1916년 건축된 이 아파트 단지는 너무 오래되어 현재 리모델링 공사가 한창이다. 오는 10월경 공사가 완료된다.
예관 선생이 거주한 집은 아직도 중국인이 살고 있다. 중국인 션(沈)씨 아주머니는 이곳에서 40년을 넘게 살고 있다고 한다. 션씨는 “가끔 이곳에 한국인들이 방문한다. 잠깐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방문객들이 물어보면, 괜찮으니 사진 찍으라고 한다”는 말을 하였다.
특히 중국공산당의 창시자이자 유명한 사상가인 천두슈(陈独秀)도 예관 선생 주택 맞은편에 살았다. 천두슈는 1915년 <신청년(新青年)> 잡지를 창간하여 중국 전역에 사상계몽 운동을 주도하였다.
중국 정부는 <신청년>잡지 편집을 하였던 천두슈 거주지를 기념하는 표지판도 설치하여 보존하고 있다.
백범 김구와 윤봉길의사가 의거를 협의하였던 <사해다관>, 백범과 윤의사가 상하이의거 하루 전날 점심 식사를 하였던 <상해YMCA> 건물
현재 보존되고 있는 상해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 유적지에서 북쪽으로 3분 정도 걸어가면 마땅루(马当路)와 싱예루(兴业路) 사거리에 도착한다.
지금은 상하이 신천지 최고급 주택가와 상가로 발전한 이곳 싱예루 169번지(兴业路169号)가 백범 김구 선생과 윤봉길의사가 상하이 의거 거사를 협의하였던 사해다관(四海茶馆) 장소이다.
윤봉길의사는 일왕 생일을 기념하고 일본이 상하이침략 전승기념식 행사를 한다는 것을 알고 먼저 백범 김구에서 거사를 타진한 것이다.
사해다관은 현재 철거되고, 그 자리에 고급 주상복합건물이 들어섰다. 상해임시정부와 신천지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이 그냥 지나치지 말고 독립운동 선열들의 역사를 기억하는 장소가 되었으면 한다.
사해다관에서 걸어서 10분 정도 거리에 상해YMCA 건물이 있다. 이 건물에는 상해기독교청년회(上海基督教青年会) 사무실이 있으며, 상해YMCA호텔(上海青年會大酒店)로 운영되고 있다.
1929년 건설된 YMCA호텔은 상해시 문화유적 건축물로 지정되었으며, 두 차례 공사를 통해 현재까지 관광객들이 이용하고 있다.
이곳에서 백범 김구 선생과 윤봉길의사는 상하이의거 하루 전날인 1932년 4월 28일 점심 식사를 함께 하였다. 또한 도산 안창호와 임시정부 요인들이 자주 이용했었다.
상해 지하철 8호선 대세계(大世界)역 1번 출구로 나오면 바로 도착한다. 위치는 시장난루 123번지(西藏南路123号)에 있다
YMCA호텔은 상해시 중심지역인 인민광장과 바로 인접하여 있다. 또한 화해루(淮海路)와 난징루(南京路)와도 가까워 많은 관광객들이 그냥 지나칠 수 있는 호텔이기도 하다.
상해 유명 관광지 예원(豫园)에서도 멀지 않으니, 상하이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이 잠깐 시간을 내서 건물 안을 구경해도 될 듯 하다.
1920년 3월 1일, 3.1운동 1주년 기념식을 가졌던 올림픽극장..현대식 빌딩으로 재건축
상해 지하철 2호선과 12호선-13호선이 교차하는 난징시루(南京西路)역 11번 출구로 나가면 만날 수 있다.
1919년 3.1독립운동 1년이 지난 1920년 3월 1일, 대한민국임시정부는 당시 최고의 극장이었던 상해 올림픽극장(夏令配克戏院)에서 ‘3.1운동 1주년 기념식’ 행사를 거행하였다.
이 기념식은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주관한 가장 큰 3.1운동 기념식으로 알려졌다.
상해지역에 있는 한국인들이 대거 참석하였으며, 행사를 마치고 올림픽극장을 출발하여 일본영사관 앞까지 차량 행진을 하며 시위를 하였다. 이 장면은 상해지역 중국인과 외국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올림픽극장은 현재 후이인 빌딩(汇银大厦)으로 재건축이 되었다. 원래의 올림픽극장 주소지는 난징시루 742번지이며, 후이인 빌딩의 지금 주소는 난징시루 758번지이다.
대한민국임시정부는 1921년 3.1절 2주년 기념식도 올림픽극장에서 거행하였다. 임시정부 역사에서 기억해야 하는 장소이다.
물론 과거의 건물은 재개발로 찾아볼 수 없지만, 100년 전 기억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장소이다.
대한민국임시정부 항일독립운동 대전환 ‘윤봉길의사 상해 매헌기념관’..1994년 매헌 정자 신축 ‘한중 우호협력’의 상징
1932년 4월 29일 오전 11시 45분경, 상해 홍구공원(현 루쉰공원)에서 굉음과 폭발이 일어났다.
윤봉길의사가 던진 수통형 폭탄이 정확하게 단상에 떨어졌다.
일본은 상해사변을 일으키고 일본국왕 생일을 기념하기 위한 행사를 개최하였다.
윤봉길 의사 상하이의거로 일본 상하이파견군 총사령관 시라카와 요시노리와 일본거류민단장 가와바타 등이 사망했다. 또한 시게미쓰 마모루 주중일본공사는 오른발이 잘렸다. 그는 13년 뒤인 1945년 9월 2일, 일본 외무대신 자격으로 미국 군함 미주리호에서 항복문서에 서명한 인물이다.
상해 매헌기념관(梅轩纪念馆)은 한중수교 이후 1994년 매정(梅亭) 정자를 신축하여 기념하였다. 이후 상하이의거 사적비를 세우고, 매정 정자를 매헌(梅轩)으로 교체하는 등 한중 양국 정부는 기념관 복원에 협력을 하였다. 매헌기념관은 한중 우호협력의 상징으로 발전했다.
매년 4월 29일에는 상하이와 서울에서 동시에 상하이의거 기념식을 동시에 거행하고 있다.
매헌기념관을 방문하려면 상해 지하철 3호선과 8호선, 홍구축구장(虹口足球场) 역에서 내리면 된다.
홍구공원은 현재 루쉰공원(鲁迅公园)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루쉰공원 안쪽으로 이정표를 따라 걸어오면 공원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기념관 입장료는 15원이며, 매헌기념관 개방시간은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이다.
윤봉길의사 상하이의거 이후 장제스는 “중국 백만 대군도 해내지 못한 일을 한국인 용사 한 명이 해냈다”면서 백범 김구와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지원을 약속하고 실천하였다.
상하이의거로 인해 일본은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들을 구속하고 탄압하여, 임시정부는 상해를 떠나 절강성 가흥(嘉兴)과 항주(杭州)로 이동하게 된다.
상해 매헌기념관 옆에 루쉰기념관과 루쉰 묘지 함께 있어, 무료 개방
윤봉길의사 의거 현장이 있는 매헌기념관 옆에는 루쉰기념관과 루쉰 묘지가 있다. 루쉰(鲁迅)은 중국 근대문학의 개척자이자 혁명가이다. 1918년 발표된 <광인일기>는 근대문학의 효시로 평가되며, <아큐정전>은 중국사회 모순을 폭로한 대표작이다.
루쉰 묘지는 원래 지난 호에 소개하였던 송칭링능원(宋庆龄陵园) 내에 있는 만국공묘에 있었다. 중국 정부는 루쉰 사망 20주기인 1956년 묘지를 홍구공원으로 이장하고 공원 명칭도 루쉰공원으로 바꾸었다.
또한 루쉰공원 안에는 루쉰기념관(鲁迅纪念馆)도 개관하여 무료로 관람을 할 수 있다. 기념관 앞에는 빅토르 위고 등 세계적인 대문호들의 동상을 세워 놓고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다.
홍구공원 상하이의거 현장을 답사하는 방문객들이 루쉰기념관을 방문하면 1930년대 한국과 중국을 위해 함께 한 혁명가들의 정신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윤봉길의사 상하이의거 이후 도산 안창호 선생, 일본에 체포..흥사단 원동위원부 건물 남아 있어
상하이의거 당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살림을 맡았던 정정화는 윤봉길 의거 이후 급박한 상황을 <장강일기>에서 아래와 같이 전했다.
“그날 저녁 우리는 상해를 탈출해야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당시 상해는 일본군의 점령하에 있었으므로 프랑스 조계 당국은 일본의 압력을 받지 않을 수 없었고, 우리에게 즉시 상해를 탈출하라고 통고하였다”
백범 김구는 이동녕-조완구 등과 윤봉길의사 거사 소식을 듣고 성공을 확인했다. 하지만 이때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다.
거사를 비밀리에 진행하느라 윤봉길의사 의거를 임시정부 안에서도 몇 명만 알고 있었다. 상해에 있는 대다수 독립운동가들은 이를 미처 몰랐다.
그중 안창호도 있었다. 김구가 피하라는 편지를 미리 보냈지만, 안창호는 이유필의 집을 방문하다가 체포되었다. 이후 국내로 송환된 도산 안창호는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다.
당시 도산 안창호 선생이 활동하였던 흥사단 원동위원부 건물이 상해에 남아있다. 안창호 선생이 체포된 이후 흥사단 활동도 위축되었다.
상해 지하철 1호선과 7호선 창수루(常熟路)역 2번 출구에서 나오면 바로 아파트 단지 입구를 찾을 수 있다. 주소는 화해중루 1270농 30호(淮海中路1270弄30号) 건물이다.
아파트는 원형을 아직도 보존하고 있다. 아파트 입구에서 안쪽으로 들어가면 된다. 현재 중국인이 거주하고 있다.
흥사단 원동위원부 건물에 조그마한 안내판을 만들어 부착한다면 관람객들이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음에 연재할 <기획보도 시리즈 3>는 매헌 윤봉길의사 상하이의거로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상해를 떠나 절강성 가흥과 항주로 이동하게 된다. 백범 김구 선생이 일본의 추격을 피하기 위해 활동을 이어간 가흥시(嘉兴市)와 관련된 독립운동 선열들의 발자취를 기억하는 내용으로 준비할 예정이다.
항일독립운동 역사 탐방을 하는 여행객들에게 대한민국 100년의 역사를 돌아보고 미래 100년을 준비하는데 작은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한 100년 전 독립운동 선열들이 희망하였던 진정한 독립은 남북으로 분단된 조국이 아닌 하나의 대한민국이었던 것처럼, 한반도 평화와 번영 통일의 그날이 오길 기대한다.
[편집자 註: 네이버 ‘임정 100주년 독립운동 역사현장’ 검색하시면 기획보도 시리즈를 인터넷으로 볼 수 있다]
이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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